교황 레오 14세의 첫 AI 회칙: Magnifica Humanitas가 요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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핵심 요약
2026년 5월 25일, 교황 레오 14세(Pope Leo XIV)가 인공지능을 전면 다룬 첫 교황 회칙(Encyclical) Magnifica Humanitas(장엄한 인간성)를 공개했습니다. 235페이지 분량의 이 문서는 AI 시대의 인간 존엄 수호를 핵심 주제로 삼으며, 빅테크의 권력 집중 비판, AI 군사 이용에 대한 엄격한 제약, 강력한 법적 틀과 독립적 감독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이날 교황은 Anthropic 공동창업자 크리스토퍼 올라(Christopher Olah) 등과 함께 바티칸에서 직접 문서를 발표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바티칸에서 회칙을 직접 세상에 소개한 첫 교황입니다. 이전 교황들은 보통 이 역할을 추기경 등 고위 인사에게 맡겼습니다.
회칙의 서명일은 2026년 5월 15일로, 교황 레오 13세가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권을 다룬 Rerum Novarum을 반포한 지 정확히 135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왜 지금, 왜 교황인가
AI 거버넌스를 둘러싼 국제 합의는 아직 뚜렷하지 않습니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AI 규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왔고, 회칙 발표 나흘 전인 5월 21일에는 AI 업계 경영진 등의 반발 속에 AI 행정명령 서명을 미뤘습니다. EU는 AI Act를 통과시켰지만, 5월 초 고위험 AI 규정의 적용 시점을 2027~2028년으로 늦추는 잠정 합의에 이르렀습니다.
교황청은 약 10년 전부터 AI를 두고 기술 업계와 대화해 왔습니다. 그래도 전 세계 약 14억 명의 신자를 둔 가톨릭교회의 수장이 회칙으로 AI를 정면으로 다룬 것은 무게가 다릅니다. 레오 14세는 즉위 직후 추기경단 앞에서 레오 13세를 언급하며 "또 다른 산업혁명과 인공지능 분야의 발전"에 교회의 사회 교리로 응답하겠다고 말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AI를 다뤘습니다. 이번 회칙은 그의 첫 회칙입니다.
회칙 제목 Magnifica Humanitas는 인간의 위대함을 뜻합니다. 부제는 "인공지능 시대의 인간 존엄 수호에 관하여(On Safeguarding the Human Person in the Time of Artificial Intelligence)"입니다.
회칙의 5대 축
인간 존엄과 트랜스휴머니즘 비판
필자가 주제별로 묶은 첫 번째 축은 인간 존엄 수호입니다(회칙 자체는 5개 장으로 구성돼 있어 이 5대 축과 장이 일대일로 대응하지는 않습니다). 레오 14세는 AI가 인간을 대체하거나 인간의 경계를 흐리려는 시도에 직접적으로 반대합니다.
구체적으로는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즉 기술로 노화 같은 생물학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사상을 비판합니다.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 즉 인간의 고유성을 의문시하고 인간과 기계의 경계를 허무는 관점도 경계합니다. 회칙은 인간이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나고 부여된 위대함"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권력 집중에 대한 경고
두 번째 축은 AI 권력의 과도한 집중 문제입니다. 레오 14세는 AI 통제권이 "소수의 손에" 남아서는 안 된다고 직접 명시했습니다.
회칙은 데이터, 연산 자원, 규제 영향력이 소수의 손에 남아 있는 현실을 인식·경제·정치의 비대칭으로 보고, 이를 "AI의 새로운 독점"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면 불투명해지고 공적 감독을 벗어나 새로운 종속과 배제, 조작, 불평등을 낳을 위험이 커진다고도 경고합니다. 특정 기업을 지목하지는 않지만, 현재 AI 산업 구도를 겨냥한 비판으로 읽힙니다.
AI 군사화 제한
세 번째 축은 군사 AI 문제입니다. 회칙의 마지막 5장(권력의 문화와 사랑의 문명)은 전쟁과 평화를 폭넓게 다루며, 그 안에 무기와 인공지능을 다루는 절을 따로 두었습니다.
레오 14세는 전통적인 기독교의 "정당전쟁론(just war theory)"이 "이제 구시대적"이 되었다고 선언합니다. 다만 "가장 엄격한 의미의 자기방어" 권리는 유지된다는 입장입니다. 전쟁에서 AI를 개발하고 사용하는 일은 "가장 엄격한 윤리적 제약"을 받아야 하며, 치명적이거나 되돌릴 수 없는 결정을 인공 시스템에 맡겨서는 안 된다고 밝힙니다. 또 기술 군비경쟁을 억제하고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국제적 차원의 공동 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합니다.
노동과 공동선
네 번째 축은 135년 전 Rerum Novarum이 다뤘던 노동권 문제를 AI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회칙은 자동화로 인한 일자리 대체, 소득 불평등 심화, 경제적 배제 가능성에 대해 사회 정의적 시각으로 접근합니다.
거버넌스 요구
다섯 번째 축은 구체적인 거버넌스 요구입니다. 레오 14세는 "강력한 법적 프레임워크, 독립적 감독, 충분히 정보를 가진 사용자, 그리고 책임을 포기하지 않는 정치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직접 명시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윤리 선언이 아니라 정책 입안자에게 보내는 구체적인 요구입니다.
바벨탑 메타포가 의미하는 것
회칙은 바벨탑과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AI 개발에 비유합니다. 하느님 없이 자기 과시와 획일성 위에 쌓아 올린 계획(바벨탑)과, 기도로 시작해 여러 가정이 성벽을 한 구간씩 맡아 함께 다시 세운 공동의 작업(성벽 재건)을 대비시킵니다.
이 비유는 기술 자체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기술이 어떤 목적으로, 누구의 이익을 위해 개발되는가라는 질문입니다.
왜 Anthropic 공동창업자가 바티칸에 섰는가
이번 발표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장면은 교황과 Anthropic 공동창업자 크리스토퍼 올라가 함께 무대에 선 것입니다.
NPR에 따르면 올라는 행사에서 AI 개발이 "때로 옳은 일을 하는 것과 충돌할 수 있는 인센티브와 제약 속에서" 이뤄진다며 상업적 이해, 지정학적 압력, 자존심과 야망을 꼽았습니다. 그래서 "종교 공동체, 시민사회, 학자, 정부" 등 세계의 더 많은 주체가 교황처럼 이 문제를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사태를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 관계는 갑자기 형성된 것이 아닙니다. Religion News Service(RNS)에 따르면 교황청은 약 10년 전부터 기술 업계와 관계를 쌓아 왔습니다. Anthropic 쪽에서는 2025년 10월 무신론자인 올라가 "가톨릭의 목소리"를 찾으면서 가톨릭 신학자와 연결됐고, 이후 가톨릭 윤리학자와 사제, 여러 종교 지도자가 Anthropic과 여러 차례 대화를 이어 갔습니다. 2026년 1월 공개된 Claude의 새 헌법(constitution)에는 교황청 문화교육부의 폴 타이(Paul Tighe) 주교 등이 외부 의견 제출자로 이름을 올렸습니다.
NPR은 Anthropic을 안전과 윤리를 앞세워 브랜드를 구축해 온 회사로 소개했습니다. CNN에 따르면 한 바티칸 소식통은 Anthropic의 참여가 "지지나 상, 보상, 시성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습니다.
엇갈린 시선: 지지와 비판의 교차
Anthropic의 참여를 두고 시선은 엇갈렸습니다.
비판적 시각도 있습니다. RNS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AI 수석 자문 데이비드 색스(David Sacks)는 이번 회칙과 별개로 앞서 2025년 10월, Anthropic이 "공포 조장에 기반한 정교한 규제 포획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바 있습니다. 상업적 경쟁자들을 불리하게 만드는 규제를 스스로 지지함으로써 시장 진입 장벽을 높이려 한다는 시각입니다. RNS는 Anthropic이 종교 지도자들과 손잡는 것을 일종의 "포프 워싱(pope washing)"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고 전했습니다.
반면 지지 의견도 나왔습니다. Anthropic과의 대화에 참여해 온 산타클라라대 마쿨라 응용윤리센터의 브라이언 그린(Brian Green)은 RNS에 Anthropic의 윤리 관심을 이끄는 이들이 "이 주제에 관심을 가진 정직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다만 과거 빅테크의 윤리 시도가 흐지부지된 사례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기술 윤리 운동가이자 Center for Humane Technology 공동창업자 트리스탄 해리스(Tristan Harris)는 발표 나흘 전인 5월 21일 로마에서, Anthropic이 윤리를 진지하게 다루려는 의지는 환영하면서도 회칙 발표 행사에 이 회사가 함께하는 데 대한 불편함은 "타당한 우려"라고 말했습니다.
NPR(RNS 공동 제작)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이번 회칙에서 AI가 불평등을 키우고 민주주의를 약화시키며 인간다움의 의미를 훼손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이 문서가 중요한 이유
교황 회칙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가톨릭 사회 교리의 역사는 이 문서들이 가진 실질적 영향력을 보여줍니다.
Rerum Novarum(1891)은 노동자의 존엄과 정당한 임금, 노동자 단체를 옹호해 가톨릭 사회 교리의 이정표가 됐고, 이후 노동 입법 논의에도 영향을 준 것으로 평가됩니다. Laudato Si'(2015)는 파리 기후총회(COP21)를 앞두고 발표되어 국제 기후 논의에 도덕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Magnifica Humanitas는 각국의 AI 규제 방향이 엇갈리는 시점에 나왔습니다. 회칙은 유엔의 "근본적인 개혁"도 촉구했습니다. 도덕적 권위를 가진 기관의 명확한 입장은 국제 논의에서 무시하기 어렵습니다.
더 구체적으로는, 회칙이 제시한 "독립적 감독"과 "강력한 법적 프레임워크" 요구가 EU AI Act 이행, UN 차원의 AI 거버넌스 논의, 각국 의회 입법에 공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교황청이 AI를 새로운 산업혁명으로 규정하고, 135년 전 산업혁명 당시처럼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사회적 계약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기술 업계가 이 문서를 진지하게 다뤄야 하는 이유입니다.
참고
- Vatican News: Pope Leo's 'Magnifica Humanitas': AI must serve humanity not concentrate power
- CNN: Pope Leo warns of AI fueling warfare in first major theological document
- NPR: Pope Leo takes aim at big tech in sweeping encyclical on AI
- Religion News Service: Inside the unlikely Vatican-Anthropic relationship that's reshaping the AI ethics debate
- Vatican: Magnifica Humanitas 회칙 전문(영문)
- Vatican News: New data of Annuario Pontificio 2026 shows Catholics growing in Africa
- Euronews: Imperfect AI Omnibus arrives. All eyes turn to Digital Omnibus